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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9 혼자 찾은 제주 / 0304~0306, 2016 3

사실 늘 여행은 '같이'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멋진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언젠가 누구와 함께 와야지' 생각을 늘 하게되니 그럴거면 그 누군가와 같이 다니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멋진 풍경을,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할 사람이 없는 여행, 이렇다 저렇다 소회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여행은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치 혼자만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래도 이번엔 꼭 혼자 가보고 싶었다. 

효정언니의 "혼자 여행을 다녀와봐라. 해외면 더 좋고"라는 말이 떠나질 않아 혼자 여행을 추진했다.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이렇게 나도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고 대단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거창한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다. 해외까지도 생각을 해보다가, 일본과 대만, 베트남 정도는 여자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다고도 하고 가본 적 있는 오사카는 혼자 갈 수 있지 않을까 한참 망설였으나 그만큼의 용기는 아직 멀었나 보다. 그래도 '비행기'는 타자는 생각에 제주도로 정했다.


역시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의 재미가 반. 예전에 제주도 여행을 가본적 있지만 그땐 준비할 때부터 부담이었다. 이 코스는 괜찮을 지, 숙소는 맘에 들어할 지,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 하지 등. 하지만 역시 혼자하는 여행이라 숙소도, 장소도 오늘은 여기갈까, 내일은 저기갈까, 어떤 곳에서 잘까 다 내 마음대로 맘 편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차를 렌트할 것이 아니므로 동선은 최소한으로 잡고 숙소도 2박 한 곳으로 예약했다. 특히 숙소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여자 혼자 있기 안전한 곳이어야 했고, 가려고 하는 곳들과 교통이 괜찮아야 했고, 특히 바다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제주도 숙박은 어지간하면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라고 써 있는데 지난 번 여행에서도 보니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바로 코앞의 느낌은 아니었다. 제주도가 섬이다 보니 어지간하면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랄까. 이번엔 정말 바닷가 해변에 있는 숙소를 구했고 블로그 후기들을 꽤 봤는데 나쁘지 않아 보였고 마침 소셜에 조식 이벤트까지 있어 예약했다. (여기로 정하고서도 다른 곳이 더 좋아보여 2~3군데 예약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처음 마음에 든 코업으로 결정)


7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비행기에선 쿨쿨. 혼자가는 첫 여행에 들떠 있거나 시집을 꺼내읽고 싶었으나 너무 졸려 결국 잠을 택했다. 아침 비행기니 어쩔 수 있나, 지금 자둬야 올레길을 걸을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며.



공항에서의 아침 식사. 일부러 간단하게. 






공항에 있는 지석묘. 예전에 왔을 땐 바로 차를 렌트하러 갔고 바로 공항을 빠져나갔으므로 공항 안 구석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혼자 오니 안 보이던 게 보이는군' 하며 첫 혼자 여행을 긍정해본다.





올레길 18 시작. 바다가 보이는 올레길이라 기대하며 골랐는데 막상 출발은 산이어서 사실 좀 겁먹었다. 다행히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모자(母子)가 있어 괜시리 마음을 놓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올레길은 절대 여자 혼자 가지말라는 말을 들었다...)











12시쯤. 식당에 가서 먹고도 싶었지만 혼자 갈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 혹시 몰라서 사놓은 삼각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뭔가 허전한 듯 해 도중도중 입에 넣은 하리보.








바다도 지나고, 제주도 전통 집, 전통 골목 같은 곳도 지나고. 







이곳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ㅠㅠ 어지간하면 여행 후 처리하려고 했는데 버스노선도, 밥집도 핸드폰으로 찾아다녀야 하는데 손까지 베일 정도로 깨져 오후 노선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혼자 여행이라 동선도 마음껏 바꿀 수 있구나' 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일부러 찾아가려고 한 건 아닌데 배고플때쯤 근처 맛집을 찾아보니 딱 눈 앞에! 전복물회를 시켰는데 물회와 밥을 같이 먹은 건 처음이었다. 아니지, 물회를 안주 아닌 식사로 먹은 게 처음이구나. 맛있었다. 추천해줄만한. 

밥먹으며 시내에 있는 아이폰 수리점 5군데에 전화했는데 아이폰 6+ 액정은 다 월요일에나 온단다. 좌절하려던 찰나 마지막 전화를 건 곳은 가능하다고 해서 이따 찾아가기로 했다. 








4시정도까지 걸었던 것 같다. 3~4시쯤엔 사실 졸며 걷기도. 완주하고 싶었지만 다시 공항에 가서 짐도 찾아야 하고, 시내도 들렀다 숙소에 가야하니 돌아가기로 했다. 예전부터 산을 탔으면 정상을 찍고 와야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목적 달성보다 '걸었다'는 만족감이 더 컸고, '다 안 걸으면 어때'하는 생각을 갖기로 하니 마음이 편했다. 

공항이 눈 앞에 보이는데 희한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못 찾겠어서 결국 택시.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는데 금요일 퇴근시간과 겹쳐 좀 서서 가다가 앉게 되었다. 나는 제주도는 한산하고 조용하며 버스도 당연히 비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철저히 '관광객'인 나는 도심에서의 번잡함을 벗어나 제주도를 찾았으니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전에 왔을 때도 렌트카를 타고 관광지만 돌아다녔으니, 다 똑같이 제주도의 멋지고 고즈넉한 풍경에 감탄하는 관광객들만 마주쳐왔던 것. 부산에 살 때 우리에겐 집 앞인데 관광객들이 집앞 편의점까지 수영복을 입고 다닌다며 농담한 적 있는데 딱 내가 그 관광객이었다.








숙소는 협재해수욕장에 잡았다. 공항에서 멀지 않았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으면서 바다가 예쁘다고 소문난 곳. 

숙소를 확인하고 저녁으로 뭘 먹을까 돌아다니려는데, 우연하게도 아까 오는 길에 검색해본 문어짬뽕 맛집이 보여 바로 들어갔다. 정말 문어 한마리가 통째로 올려져있다. 이곳도 추천해줄 만큼 괜찮았다. 서울에 있었으면 종종 찾아가겠다 생각하며.





#코업레지던스. 

짐을 놔두고 편하게, 가볍게 돌아다니기 위해 숙소는 2박 한 곳으로 정했다. 

다 좋은데 저 세면대는 왜 테이블 같은 곳 위에 두어서 손 씻을 때마다 물이 철철 흘러넘치게 만들어놓았는지. 누군가와 같이 와도 좋겠다 싶은 숙소였지만 저 세면대는 에러...ㅠ 






다음날 아침. 비가 왔지만 나쁘지 않았다. 베란다에 앉아 비가 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괜시리 기분내며 시집도 꺼내보고 수첩에 일정을 끄적여 본다. 







근처 맛집으로 검색해 본 모닥식탁. 제주도에서 카레를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카레를 좋아하니까. 메뉴는 두가지 정도였던 것 같고 난 딱새우 카레를 시켰다. 샐러드도, 카레도, 새우도 정갈하고 맛있었다. 딱새우는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네이버에 '딱새우 먹는법' 검색까지 해가며 까먹었다. 검색해보지 않았다면 아깝게 대충 빨아먹다 말았겠다, 다행이다 생각했다. 구석에 있어서 제주도에 찾을 때 일부러 가긴 어렵겠지만 근처에 머문다면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 오기 며칠 전날 추천받은 세화해수욕장과 해녀박물관을 찾았다. 여길 안 왔으면 둘째날 뭐 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잘 다녀왔다 싶었다. 딱딱 맞게도 숙소에서 버스 한번이면 다녀올 수 있었다. 해녀박물관-제주 여성의 삶이 울컥했다. 










조용했던 세화 해수욕장. '멋지다'는 느낌보다도 소박한 느낌의. 

이날의 첫 커피를 한잔 하러 까페에 들어갔는데 커피 대신 한라봉차를 시켰다. 손으로 만든 엽서도. 멍 때리다 이병률 여행 산문집도 보다가. 이런 시간을 얼마만에 가져보는 건가 싶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라면 못 찾을 식당. 전에 제주에 왔을때 유명하다고 해서 해물뚝배기를 먹었는데 비싼 것에 비해 실망이 컸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래서 찾아왔는데 괜찮았다.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식당 이름이라도 적어놓는다는 게 깜박했나보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부터 '가야지' 별렀던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숙소 바로 옆) 환할 때 들어갔는데 두어시간 있으니 금새 깜깜해졌다. 턱 괴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도 참 좋았다.







사실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마지막 날 밤이라 스스로 되새기며 맥주도 한잔 하고 먹고 싶었던 거 오늘은 참지말자고 스스로 말해주며 편의점에서 다 쓸어담았다. 무한도전 보며 진짬뽕도 먹고. TV에선 송중기 신드롬이라며 예전 송중기부터 지금 송중기까지 매력탐구를 해준다. 제주도에서 태양의 후예를 처음 보았고 요즘이 송중기 신드롬인 걸 알게 되었다. 프로듀스 101도 숙소에서 뒹굴며 처음 보았는데 이때 눈에 들어온 김세정이 지금도 제일 이뻐 보인다. 






둘째날 아침은 조식을 먹었다. 첫날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텐데) 괜시리 여자 혼자 조식 먹는 걸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일부러 먹지 않았다. 둘째날도 원래는 바로 나가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난 가볍게 먹었지만 죽도 있고 씨리얼도 있고 쏘세지도 있었고. 누구와 와도 괜찮아할 조식이었다. 










숙소를 정하고 근처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검색했을 때 제일 많이 나왔던 '카페 델몬드'. 사람이 많아서 좋은 자리를 못 차지 할까봐 걱정했는데 10시쯤 갔더니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곧 많아졌지만. 실내에 앉아있다가 곧 밖으로 나갔다. 바닷바람은 셌지만 차갑지 않아 계속 있을 만 했다. 저 시집은 내내 들고 다니고 설정샷으로 잘 써먹었구나. 이번 여행에서 책 2권과 저 시집을 가져갔는데 책은 다 읽었지만 시집은 제대로 펴 보지도 않았다.

한참 바람을 맞다가 돌아가면 어떻게 살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지 이제야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들, 마음 속에 있던 말들을 메모했더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괜시리 화가났던 마음들도 좀 가라앉았고 답답했던 생각들은 실마리들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일 뿐이라고 해도 여행은 그런 기분과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은 좀 웃겠지만 제주에서의 마지막 메뉴는 파스타를 선택했다. 먹을 만 했지만 또 갈만하진 않았다. 그래도 저 말 '왠지 제주에서 먹는 것이 맛있는 것 같아'는 말은 동의. 제주 이즈 뭔들. 





저 출구를 나가면 엄마아빠와 조카가 나와있을 거였다. 나오지 마시라고 해도 나와계실 분들이다. 출구에서 부모님이 보이는 순간 바로 여행의 끝을 알리는 것 같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러니까 공항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까지라도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 기분을 좀더 유지하고 싶었는데 두분은 나와계실 거였다. 그래도 그게 부모님 마음이지 싶어 더 말리진 않았다. 어쨌든 현실을 마주하며 또 여행을 기약해본다. 



Posted by 생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