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8. 6. 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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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빨리 지나갔다고 느낀 한 주. 

월요일은 오후에 근처 쇼핑몰에 가서 아기 모자와 바지 살겸, 두어시간을 보냈고. 

화요일은 엄마집에 가서 바닥에서 놀게 하고 안고 자고. 오후 늦게 병원에 가 비타민을 사고 필라테스를 미루고.  

수요일은 현충일. 남편과 어디갈까 고민하다가 파주 롯데몰로. (스타필드 갔다가 늘어선 차량에 바로 돌아섰다.) 

목요일은 1차 영유아 검진에, 또 선물살 게 있다는 핑계를 만들어 쇼핑몰에 다녀오고. 

금요일은 엄마도 오셨고, 외출할 일이 있어 아기를 맡기고 오후를 보내고. 

수요일이 빨간 날인게 너무 다행이고 기뻤고. 엄마가 목요일 밤에 올라오셔서 마음이 괜히 더 든든했고. 

모든 사람의 근무가 월화수목금토일 이런 식이면 좋을텐데, 절실히 느낀 한 주. 

덜 힘들고, 덜 외롭고, 덜 지루하다고 느낀 한 주.  

이번 주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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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진이가 많이 컸다고 느낀 한 주였다.  

전엔 우는 서진일 한 명이 안고 방안을 뛰어다니며 달래고, 그 사이 한 명은 빨리 밥을 흡입하고. 그래도 잘 달래지지 않아서 먹는 사람도 체할 것 같고, 달래는 사람도 진땀을 뻘뻘 흘렸던 때가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차에 태워 쇼핑몰에도 가고. 유모차에 앉혀놓고 바라보며 둘이 같이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고. (물론 징징대기에 달래며 먹느라 여유롭진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심지어 유모차를 옆에 두고 아.아도 한 잔 했다.  

돌아오며 남편과 이야기했다. 우리 서진이 정말 많이 큰 것 같아...  

요즘 평일 저녁도 아기 마지막 수유를 남편이 하고, 난 저녁 준비를 후다닥 하고. 아기가 쏘서에서 노는 사이, 둘이 저녁을 먹는다.

남편은 이렇게 둘이 밥을 같이 먹는 것만도 '꿈만 같다'고 한다.


1차 영유아 검진 결과도 받았다. 키는 앞에서 11등. 몸무게는 9등.  

하루에 200ml 씩 5번, 1000ml을 꼬박꼬박 먹으니 잘 먹는 아기라는 생각은 했지만 등수가 꽤 높구나. 흠.  

병원에서도 울기는 커녕 한번도 칭얼대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이 "편하게 진료했다"고 할 정도였는데, 

집에 와서 범퍼에 눕히자마자 "왜 날 내려놓느냐"며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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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재우고 나오면 9시쯤. 바로 아기 빨래를 하고, 설거지나 젖병을 씻고 소독하고. 집안일 이것저것을 하고.  

그러면 10시반~11시가 되는데 그때부터 주어지는 짧은 나의 시간.  

전같으면 좀 늦게자도 되겠지만 아기가 5시~5시반이면 일어나서, 강제 기상시간이 잡혀있으니 12시엔 자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니 하루 중 뭔가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인 셈. 

하지만 하고싶은 게 너무 많아서, 혹은 그마저도 해야할 일을 하느라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도 읽고 싶고, 밀린 블로그나 사진 업로드도 하고 싶고, 요즘 놓친 기사들도 보고 싶고, 나중에 봐야지 미뤄둔 프로그램도 보고싶고. 

하지만 일주일은 이유식 준비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어떤 날은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거나 알아보고.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을 하다보면 결국 하고싶은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오늘같은 날은 '이 정도는 내일 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해야할 일들보다 지금 내가 하고싶은 일부터 하고 있다. 맥주 한잔에, 오랜만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일기를 끄집어내 정리하기. 하지만 '아. 이번주 돈 정리는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마음이 너무 안 좋을텐데...'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앞으로는 자기 전 <아기 사진 업로드-쓴 돈 정리-일기> 하루 30분 간 투자하기로 마음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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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임신을 하고부턴 책은 주로 에세이나 단편 소설을 많이 본 것 같다. 

어려운 책, 생각을 하게 하는 책들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오래 보지 못했고. 

무엇보다 여행을 가면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일상의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등.  

아기를 낳은 후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고 내 주변, 일상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에세이가 좋았다. 


얼마 전 김소영씨의 에세이도 사보았는데, 남편인 오상진씨의 책도 발간되었다.  

사실 뭔가 오글오글 할 것 같고, (아내에게 바치는 글인 줄 알았다.) 어디 댓글을 보다보니 하루키 같은 유명작가의 글도 아닌데 왜 일기를 사서 보냐는 말에 사지 않았는데. 서점에 갔다가 책을 발견하곤 한번에 집어들고 말았다. 1년 동안 일기를 매일 썼다는데 매일 어떤 일상을 살았길래 빠짐없이 썼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슬쩍 보니 아내에게 쓴 글이 아니라 본인의 이야기인게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그를 응원하고 싶었달까.  

어쨌든 오늘 나를 오랜만에 일기를 쓰게 하는 데 성공했으니, 산 게 아깝진 않은 듯.

Posted by 생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