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2011. 12. 12. 10:41


[2011년 학생회 선거를 돌아보며]

2011년 각 대학의 총학생회 및 단대 학생회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언론들과 많은 국민들이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관심을 갖는다. (어쩌면 요즘은 대학생들보다 언론과 사회가 더 대학 선거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학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한국사회 민주화 투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왔다. 대학, 그리고 대학생은 한국사회 민주화 투쟁을 가장 실천적으로 앞장서왔으며 함부로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통일, 한국사회 성격 문제를 사회에 파급력 있게 던져줬던 지성의 집단이었다.
때문에 대학선거는 아직도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받으리라 생각된다.

2011년 학생회 선거를 돌아보며

이번 대학 선거는 사회적으로나 대학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네이버에 '대학 선거' '총학생회 선거' 등을 쳐보았다. 먼저 놀란 것은 예년보다 현저히 떨어진 기사 수, 즉 총학생회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좀 선정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언론이 관심을 가질만한 '운동권vs비운동권' 논쟁도 줄었고 학생회 선거 파행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줄었다. 즉 한마디로 대학 총학생회 선거는 더 이상 언론과 사회가 주목하여 전망을 내놓을 게 없는 사안이 되어버렸단 생각이다.

대학마다의 이슈도 없었다.
몇몇 대학의 선거 과정이나 자료집 등을 보면 이러한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년 학생회의 전망과 포부, 학교를 어떻게 바꿀지, 혹은 함께 만들어갈 지를 정책과 공약으로 보여지는 선거 과정에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만한, 혹은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등록금, 취업, 학사 문제 등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쉽게 바뀌지 않으므로 재작년과 작년, 올해의 공약이 완전히 새롭게 바뀔 순 없다. 하지만 등록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작년과 올해가 다를 수 있다. 학사 제도가 변한 것은 없지만 학사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와 조건은 다를 수 있다. 작년 학우들의 요구와 올해 학우들의 요구는 그 순위가 다를 수 있다.
같은 주제, 사안이더라도 접근방식과 현황은 다를 수 있으며 또한 적어도 세밀함의 차이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거리에서만 봐도 그 다양함과 창의성에 깜짝 놀라는 세상인데, 젊고 패기발랄한 20대가 모여있는 대학 선거는 여전히 발랄함, 창의성, 재미, 기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냉소와 무관심의 모습이었다.


무관심에 대한 문제는 학생회의 노력으로 시간을 갖고 회복해 나간다고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고 치자.
더욱 심각한 문제라 생각되는 것은 대학 선거가 굉장히 기성 정치권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원래 선거를 공정하게 치루며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독려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출마한 선본들의 공약과 정책이 최대한 많은 유권자에게 알려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한명이라도 더 투표를 해서 학생회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 홍보와 투표 독려는 커녕 많은 대학에서 선관위가 지나친 선거 감시와 규제, 편파적 운영으로 인한 선본 자격 박탈 등을 일삼아 학생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몇몇 언론들이 '반값 등록금 선본'이 생각보다 성적이 저조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나는 이렇게 보는 것은 대학과 사회의 처지와 분위기를 모르는 것이며 학생회의 역할과 현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굉장히 단편적인 평가라 생각한다. 대학생이 진보적이고 반값 등록금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구호를 건 선본을 당연스레 찍은 것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투쟁'을 지지하고 반값 등록금이 되기를 희망한다. 87년 이후에 태어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는 대학생들은 당연히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비상식'적이고 자연스레 비난과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20대 80의 사회, 강남과 비강남의 현실을 자연스레 들어왔고 느껴온 20대들은 열심히 공부해도, 정말 열심히 살아도 변할 수 없는 현실에 치를 떤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이지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20대가 보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학생회가 비쳐지는 모습이 대학생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학생회가 걸고 있는 구호나 내용이 굉장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생뚱맞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 학생회처럼 무리하게 주한미군 철수나 신자유주의 처폐를 외치는 학생회는 거의 없다.
문제는 풀어가고 모아가는 방식의 문제이다. 구호는 있으되 집회 가자고 하는 것 말고는 설명도, 학우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식도 없다. 정치적 사안을 놓고도 결론을 내는 방식,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내용도 다양할진데 늘 학생회는 생각의 결과와 집회의 일정만 있다.

2008년 광우병 때도 올해 반값 등록금 촛불때도 여전히 안타까웠던 것은 시끌시끌한 광화문과 달리 조용한 대학의 분위기였다. 이명박 심판, 심지어 퇴진의 구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리와 달리 대학은 뜨겁지 않았다. 예산안 날치기 처리, 한미FTA 날치기 처리 등을보며 문제의식을 느끼는 대학생들은 많으나 대학이란 공간이 분노하는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이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학은 더 이상 진보의 요람도, 지성의 집단이라고 불릴 수 없지 않을까.


학생회,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까.

80년대 말조심, 입조심 해야할 독재정권 시절에 거리로 쏟아져나와 민주화를 외쳤던 대학생 선배들의 모습은 지금 들어도 가슴 뜨겁다.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대학은 날선 비판의식으로 사회의 방부제를 해왔고, 사회 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야 할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했다. 방식과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대학의 기능과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기능과 역할은 역시 개인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게 많다. 인터넷에 불만의 글을 올리고 혼자 집회에 참가하는 식으로 나의 의지와 마음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시 뜻과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힘을 모을 수 있는 조직이 학생회가 되어야 한다.

선관위의 편파적 운영과 등등의 문제또한 다시 학생회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할때, 학생들의 힘으로 감시와 견제가 가능할때 해결 될 수 있다. 예전에 선관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학생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며 선거의 감시와 견제는 선관위가 아니라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다보니 이러한 문제들이 생겼을때 정화의 기능이 없는 것또한 학생회가 대학생들 속에서의 신뢰가 약해진 데 가장 큰 원인이 있겠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이며 사람 사이의 관계의 문제이다. 믿음을 회복하는 것, 함께 하는 것 모두 학생회라는 조직이 앞세워지는 게 아니라 운영하고 책임지고 만들어가는 사람과 함께 하려는 사람간의 관계와 노력의 문제이지 않을까.

여하튼 학생회란 조직은 다시 대학생들의 조직다운 모습으로, 그들의 의사와 결정이 담긴 민주적 운영구조를 갖춘 조직으로 거듭나야할 것 같단 생각이 선거를 보며 느낀 소감이다.

학생회가 20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음 좋겠다.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학생회 무너진 신뢰 회복, 사회에서의 영향력 등은 그 주인인 '대학생'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학생회는 20대 초반(중반까지^^;)의 대학생들이 모여 운영하고 만들어가는 '젊은 조직'이다. 그 나이에 그만한 책임감을 부여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나고보니 사회를,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아니라 책임감을, 사업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책임감을 배웠던 것 같다.

학생회라는 조직이 대학생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의사를 모아나가는 방식을 배우고 모인 의견들과 결정들을 많은 사람의 힘으로 추진시켜 성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들로 다시 믿음과 신뢰가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제목을 잘 뽑아보고 싶었는데 뭐라 한 줄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구나.ㅜㅜ

Posted by 생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