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가 없었으면 어떻게든 해외로 떠나고 싶었던 올 여름.
아마 이번 여름이 아니면 언제 또 나가보랴 생각했던 게 컸던 것 같다.
가까운 해외는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괜시리 불안하기도 하고,
빚내서 가는 여행, 해외까지 가는 건 무리다 싶어서 제주도로 결정.
제주도로 결정하는 데는 그런 마음도 컸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내리면 해외에 온 것 같은 그런 느낌.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도 어디 멀리 떠나온 것 같고, 제주도 공항에 나오자마자 보이는 야자수들도 꽤 이국적인 분위기를 냈던 게 기억이 나서 제주도를 가야지 싶었다. 막판에 부산과 제주도를 놓고 고민했으나 극 성수기에 부산 해운대 바다보다는 제주도 바다가 조금은 덜 붐비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우리는 이미 3년 전에 제주여행을 다녀온 적 있으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다.
신랑이 1차 시험 본 며칠 뒤여서 (떨어진 시험) 기분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행 코스를 내가 짰는데 신랑은 신랑대로 운전만 하다 가니 피곤해서 기분이 안 좋았고, 나는 나대로 그래도 고생해서 준비했는데 알아주지도 않는다며 서운해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지난 코스를 찾아보니 내가 봐도 기가 막혔다.
그때는 아마 제주도를 몇번 더 오게 될지도 모르고, 주요하게 갈 곳만도 너무 많아서 그 중에서 마음에 들고 꼭 가볼만한 곳을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이틀 동안 제주도를 한바퀴 빙 돈 셈이었다. 그것도 별표 모양으로. 밤엔 술도 한잔 하고 피로도 풀려고 찾은 여행에서 운전만 하다 가니 그가 성질이 날 만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진심으로 신랑에게 사과했다.
작년 3월엔 혼자 제주도를 찾았다. 그때 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주도 여행에 감을 잡았다. 너무 많이 다니려는 욕심을 버리고 조용한 바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숙소 근처에 볼만한 곳을 찾다보니 충분히 볼 거리, 먹을 거리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혼자 한 여행이어서 카페에도 오래 있었고 책도 봤고 바쁘지 않게 다니긴 했지만 제주도는 섬 전체가 관광지여서 걱정이 없다는 확신까지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도 협재를 찍고, 그 근처 숙소를 2박으로 정하고, 3~40분 이내로 다닐만한 곳을 찾아봤더니, 역시 2박3일도 부족할 정도로 차고 넘쳤다. 그리고 이렇게 다니면 제주도를 정말 여러번 와도 지겨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꽤나 신이났다.
첫날은, 제주도착-김만복 김밥-망고레이 본점-애월 해안도로-몽상드애월(카페)-인생밥집-숙소-저녁 휴식의 일정.
김만복 김밥은 4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먹을 만했다. 특히 오징어무침은 강력 추천. 김밥, 컵밥만 시켰다면 조금 삼삼하고 조금은 느끼했을 뻔했는데, 오징어무침 덕분에 정말 맛있는 김밥이 되었다. 마치 오징어무침없는 충무김밥은 생각할 수 없듯이. 다만, 2인용으로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신랑이 양이 부족할 거라는 건 생각을 못했다.
해안을 보며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해안도로는 짧아서 조금 아쉬웠다. 내가 "나는 바다도 보고 풍경도 보니 좋은데, 운전하는 사람은 보지도 못하겠네."하니 신랑이 "원래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한 거"란다. 해안도로를 따라 간 지디 카페 몽상드 애월. 지디 팬이긴 하지만 카페는 조금 실망했다. 옆에 있는 봄날 카페가 되려 경치도 좋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사진 찍기도 좋으니 더 추천한다. 나쁜 점을 자세히 적어놓긴 싫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많이들 가고 싶어할 것이므로) 다음엔 꼭 봄날에 가리. 애월 해변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보며 웃다보니 실망감도 가시고 기분도 좋아졌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맛집인 인생밥집. 어쩌다 검색해서 알게된 밥집이었는데 인스타 팔로우를 해놓으니 매일 맛난 사진들이 업데이트되어 점점 가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많아 기다릴까봐 점심도 생략하고 이른 저녁 시간에 도착. 그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 제일 유명하다는 물회와 전복볶음밥을 시켰는데, 그가 물회를 안 좋아했다니! 나는 임신해서 물회를 못 먹고, 그는 안 좋아하니, 결국 물회는 전복만 골라먹고 볶음밥 하나로 나눠먹은 셈이 되었다.
숙소는 라온호텔&리조트. 극 성수기다보니 팬션도 다 10만원이 넘고, 늘 예약할 때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실망이 컸던 터라 좀 괜찮은 데서 쉬자는 생각으로 과감히 호텔 이름이 붙은 곳을 골랐다. 천만다행으로 나도, 그도 만족할 만했다. 리조트 단지가 커서 어디 근사한 곳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시설도 괜찮았다. 과감히 바다 전망을 포기하고 더블 침대를 택했지만 넓은 창문으로 햇살과 초록빛이 들어와 방도 밝고 경치도 좋았다. 조식이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첫날 저녁은 시원한 에어컨 틀어놓고 피로를 풀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호텔 로비로 내려와 맛은 없었던 파스타와 햄버거를 먹고. 쇼미더머니6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게 계획이었으나 둘다 10분도 채 보지 못하고 쿨쿨.
둘째날 일정은 호텔조식-새별오름-카멜리아힐-국수나무-오설록티뮤지엄-협재해수욕장&카페-저녁-재즈공연.
숙소에서 바로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건 꽤 괜찮았으나, 가격에 비하면 추천할 만하진 않았다. 다만 나는 아침으로 모닝빵(딸기쨈과 버터를 같이 바른!), 계란후라이나 스크램블, 우유, 간단한 과일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으므로 일단 만족. 조식을 먹고 씻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새별오름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고 큰(?) 모습에 오길 잘했다 생각부터 들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곧 도착하는데 동동이 때문에 천천히, 쉬다가다 쉬다가다 했음에도 30분도 채 안 걸렸던 것 같다. 가을에 더 멋지다고 하는데 여름에도 초록초록 푸른 모습을 한 눈에 담고 싶다면 새별오름도 가볼만하다.
카멜리아힐은 입장료를 16,000원이나 내고 들어갔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잘 꾸며놓은 수목원 같긴 했는데 메인인 수국이 많이 없었고, 신랑도 자연 그대로의 새별오름이 낫다며 돈 내고 들어갔음에도 반도 채 보지 않고 나왔던 것 같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배가 고파졌던 것도 큰 이유였겠지, 사실...
극 성수기고, 주말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사람으로 붐비지 않는다며 생각할 찰나, 오설록티뮤지엄 근처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들어가려다 더운날 밖에서 돌아다니기도힘들고 에어컨 바람이 더 쐬고 싶어 그대로 차를 돌려 협재로 향했다.
그가 2주전에 수학여행으로 다녀왔던 협재 해수욕장 앞 커핀 그루나루로 들어가 시원한 빙수 먹고, 야외 테라스에 있던 썬베드에서 졸면서 바다를 바라보니 이게 휴가구나 싶을 정도.
마지막날 일정에 제일 고민이 많았는데, 다른 것 보다도 렌트카 반납 시간 때문이었다. 12시 반납인데 우린 4시 45분 비행기. 차를 반납하고 돌아다니려니 택시 타고 이동해야 하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려니 엄두가 안 나고. 렌트카 반납을 연장할까, 짐을 맡길까 하다가 결국 렌트카는 예정대로 반납하고 공항으로. 일단 짐을 보내고 생각하자고 하다가 비행기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고 해서 1시 10분차로 제주 출발. 아쉬운 듯 했지만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빨리 가서 김포 롯데에 있는 딘타이펑을 먹자!는 생각에. (최근 한두달 동안 제일 먹고 싶었던 거였다.)
이번 여행도 큰 변수없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잘 쉬다, 즐기다 온 여행이었다.
제주여행에 확실한 감을 잡았고,
통갈치, 해물탕, 맛집들을 가본 게 계획대로 되었고,
늘 숙소를 정하는 데 두려움이 컸는데 조금 자신이 생겼고,
지난 제주 여행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을 지울만큼 이번에는 둘이 싸울 일 없이 잘 다녔고,
걱정했던 사람에 치이고 붐비는 일정이 아니었어서 더욱 좋았다.
문제는......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녔건만 디카에 메모리카드를 넣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같이 사진보며 여흥을 즐기려던 찰나, 그가 노트북에 꽂혀있던 메모리카드를 보며, "카메라에 뭐 넣고 찍었어?" 하자마자 순간 쿵....!!!
화면에는 No card라며 깜박깜박였는데 나는 찍을 때마다 보지 못했고,
찍으면서 가끔씩 잘 나왔는지 보기라도 할텐데 이번 여행에선 한번도 그러지 않았으니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도 메모리카드가 들어있지 않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난 카메라로 사진 찍으려고 폰으로는 거의 찍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가 가족들이나 지인들 보내려고 찍어둔 사진들과 곳곳에서 셀카봉으로 찍은 덕에 대부분 장소에서의 사진은 남아 있었다. 다만 다 인증샷 같은.........
카메라로 열심히 찍은 풍경들이며, 숙소며, 해물탕이며........
사진은 너무 아깝지만, 여행은 좋았다..........
콧바람/언제나 좋은 제주2017. 8. 3. 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