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성병원 #제왕절개 #수술은_할부의_고통
/. 디데이
26일 오전 7시에 유도분만 예약을 해놓았으니 26일, 늦어도 27일엔 동동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연휴.
며칠째 계속 피가 나는 게 불안해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병원을 급하게 찾았다. (이슬이면 갈색에 점성이 있다는데, 난 새빨간 피가 생리처럼 며칠 계속되었다)
당직쌤에게 진료를 받고, 초음파, 태동검사를 했고, "이슬인 것 같다", "태동이나 아기 심장박동에는 이상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24일 밤부터 좀 심한 생리통 같은 통증을 느끼며 '아 이게 가진통인가' 하면서 좀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인제 진짜 D-1이다. 조금씩 잦아지는 허리통증을 견디면서 샤워를 하고, 집 청소를 하고, 신랑 출장 짐을 같이 싸고. 저녁엔 크리스마스 저녁이자 둘로서의 마지막 만찬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뭘 먹을지 한참 고민하다 동동이를 가진 걸 확인하고 갔던 매드포갈릭에 가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확인했음에도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신랑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던 기억, 그 말을 듣고 "진짜? 진짜?" 확인하던 신랑의 대답, 그리고 뭔가 모를 설렘으로 기분이 좋았던 그날을 생각하면서 동동이를 맞이하고 싶었달까. 사실 무엇보다 당분간 분위기 잡고 못 먹을 곳에 가서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리통증은 밤부터는 더 잦은 주기로 찾아왔다. 진통측정기 앱으로 측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파서 놓치기도 하고 어떨땐 주기가 조금 길어지기도 해서 일단 병원은 (어차피 7시에는 가야하니) 최대한 아침에 가는 걸로 생각하고 참아보기로 했다. 초산은 진통 주기가 5분 이내여야 병원에 오란 말을 들었던 터였다. 주기는 그렇다고 하나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동안 진통을 못 느낄까봐 걱정했을 때 출산 선배들이 "걱정하지마라, 그 고통은 모를 수가 없다"고 했던 말이 딱 맞았다. 그래도 좀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새벽 3시부턴 이젠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고통에 이르렀고 신랑도 5시쯤엔 깨서 옆에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복식호흡을 하면 그래도 좀 진통이 나아지는 것 같긴 했다. 어떻게 그 새벽을 보냈는지. 5시 좀 넘어서 일찍 씻고 그래도 밥은 먹어야겠기에 신랑이 데워준 갈비탕과 밥을 챙겨먹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일부러 손 잡고 천천히 걸어서 갔는데 6시 반 정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가자마자 옷 갈아입고 수액을 맞기 시작하고. 조산사가 내진을 했고 바로 관장을 했다. 굴욕 세트라고 긴장을 꽤 했었는데 사람들 말대로 그런 생각을 느낄 겨를 없이. 며칠 전부터 변을 못 보고 있었는데, 난 혹시나 관장을 하고 나면 진통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옛날에(중학교때)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관장하고 나아졌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여튼 관장을 좀 기대(?)했는데 이상하게도 약물을 투여하고 10분이나 참았는데도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거슨 관장과 전혀 상관없는 진통이었나보다.)
어차피 오늘 낳을 생각으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었으니, 자연진통이 오긴 했지만 촉진제를 좀 쓰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8시 정도부턴 극심한 허리 통증을 느끼며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담당쌤이 오셔서 또 내진. 아파서 소리를 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진하시더니 너무 아프면 무통주사를 줄테니 좀 보자고 하셨다.
9시반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무통주사를 알아서 주셨다. 마취과 의사쌤이 오셔서 척추에 놓긴 하지만 안 아프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팔뚝주사 정도다... 말을 많이 해주셔서 좀 안심하긴 했으나 척추에 주사를 놓다는 게 그 아픈 와중에도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무통주사를 맞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뿐. 담당쌤이 한 2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라며 11시쯤 보고 판단해보자고 하셨다. 무통주사를 맞고 잠깐 괜찮은 것 같더니, "오, 정말 무통주사빨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할 찰나 다시 진통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무통주사빨이 오래 가지 않았던 듯. 1시간도 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11시쯤 담당쌤이 오셔서 다시 내진해보시더니 그대로라고 (아기가 안 내려온다고) 수술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신랑과도 수술을 염두해 둔 이야길 했었기에 신랑과 바로 수술을 결정했다. 간호사들이 신랑을 불러 신생아 검사에 대해 문의하는 사이, 난 간호사들에게 이끌려 수술실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신랑은 "화이팅" 한번 외쳐주고 수술실로 보내려 했는데 돌아보니 난 이미 수술실로 갔다고. 나도 신랑 얼굴 한번 보고 수술 들어갈 줄 알았는데 어느새 팔은 붙들려 있고 하반신 마취가 시작되었다. 수술을 생각하긴 했었지만 위 내시경 같은 것도 해본 적 없는 터라, 막상 수술대에 누우니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신랑 손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 찰나, 담당쌤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해준 말이 꽤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마취가 제대로 안 되는 건 아닐지, 하반신은 마취가 되어도 정신은 또렷해서 칼 소리며 배를 가르는게 다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을 했었는데, 어느 새 다리가 저린 게 느껴졌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몸이 몇 번 당기는 느낌이 나더니 “아기 나왔어요”라는 마취쌤의 말이 들렸고 옆으로 옮겨진 아기의 “~애, ~애”하는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기가 나왔구나’ ‘아, 별말 없는 걸 보니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다 있나보다’
몽롱한 와중에도 다행이라는 안심을 할 때쯤 마취쌤이 “아기 똑똑해요.” “좀 잘게요” 하시면서 재워주셨다. (신랑 말로는 수술 들어간지 10여분 후 아기가 나왔다고 한다.)
눈을 뜨고 정신이 좀 들랑말랑 할 때쯤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와 보여주며 “동동이에요. 산모님. 동동이가 양수에 오래 있어서 좀 건조해요. 오일을 많이 발라줄게요.”하며 내 뺨에 동동이 뺨을 갖다대주었다. 그리고 “젖도 한번 물려볼까요?”하며 가슴에 대주었는데 동동이가 바로 울어버렸다... 드라마에서나, 많은 후기에서나 아기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감동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는데 우리의 첫 만남은 어색과 얼떨떨...?
조금 후, 신랑이 회복실로 들어왔다. 사실 동동이와의 만남보다 신랑이 빨리 보고싶었다. 내가 회복실 들어와서 코골고 자더라는 말을 웃으면서 첫 마디로 해준 신랑. 난 아마 동동이 봤냐는 말을 제일 먼저 했던 것 같다. 한 두어시간 있었나,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3층 회복실에서 7층 입원실로 이동. 일찍 와계신 어머님과 신랑이 보였고 어머님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수고했다”고 해주셨다.
수술 당일은 되려 큰 고통 없이 지나갔다. 요즘은 수술 후 무통주사 덕분에 마취가 깨도 덜 아프다고 하더니 덕분인지.
같이 영애씨를 보기로 했던 신랑은 피곤했는지 9시쯤 누웠다가 금새 잠이 들었다. 리모콘 작동이 안돼서 채널변경이 안되어 핸드폰으로 영애씨를 보는데 금방 꺼지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잠들었다 눈 뜨면 겨우 30분에서 1시간 밖에 안 지나있었고 심심하고 등은 아프고 새벽 3시쯤 안 되겠어서 다시 TV를 켰더니 동물 프로그램을 하고. 핸드폰은 꺼져 있고. 목이 너무 말라서 자는 신랑을 10번 정도 불렀으나 못 듣고 잘 자고. 결국 5시쯤 신랑을 깨워 물을 마시고 같이 이름을 토론하며 둘째날 아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