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첫날 아침.
남편과 아침 일찍 눈을 뜬다면 근처 산책을 하자고 이야기하며 잠들었으나 시간 다 되어 부랴부랴 출발.
첫 목적지 뤽상부르 공원으로 걸어가는 길. 걸으면서 보이는 건물 모습이 다 멋지다, 멋지다. 이곳이 파리구나.
오늘의 코스는 뤽상부르 공원-팡테옹-노틀담 대성당-법원-시청-퐁피두 센터-카르나발레 박물관-보주 광장/바스티유 광장-간단한(!) 쇼핑.
숙소에서 출발해 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니 오늘은 많이 걷는 날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숙소를 나섰다. (내일은 더 많이 걷게 될 줄이야)
뤽상부르 공원.
우리는 유명한 곳으로 찾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조깅을 하고, 담배를 피고, 누워 낮잠을 청하는 등 일상을 사는 그런 공원일 듯한.
파리에서의 머무는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하루 정도는 관광지가 아닌 이런 공원에서 여유있게 보내는 게 어쩌면 가장 파리 여행을 잘 즐기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또 한국사람다운 바쁜 발걸음을 옮겨본다.
역시 지나는 길에 보이는 흔한 프랑스 빵집.
판테옹과 소르본 대학.
팡테옹은 빅토르 위고, 볼테르, 루소, 퀴리 부부 등이 지하 묘소에 잠들어 있는 곳이다.
결국 퀴리 부부는 못 찾았지만.
물리학자 푸코가 이곳 돔에서 지구 자전을 증명하기 위한 진자 실험을 했언 것으로 알려져 있다더니 정말 진자실험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전경을 보고 싶다면 약간 떨어져 보는 게 더 멋있는 것 같다.
남편이 "우리나라 관광지 중에 웅장하다고 느낄 만한 곳은 어디일까?" 묻길래 생각해보니 우리는 단아하고, 멋지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곳은 많아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곳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점심은 팡테옹이 보이는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다 서로 마주보지 않고 옆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사람들. 넷이서 딱 붙어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식사를 하기로 한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크레페를 먹고 싶어 가장 위에 있는 메뉴를 시켜보았는데, 음. 정말 기본적인 크레페. 아무 맛이 없었다.
그래도 카푸치노는 거품이 이렇게 부드럽다니. 커피 반, 거품 반.
햄치즈 샌드위치를 시킨 남편은 정말 햄과 치즈 밖에 없다며.(소스, 야채 하나 없이)
센 강을 이렇게 걷다니.
노틀담 대성당이다. 12세기 고딕 건축물의 최고봉.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한.
당연히 빅토르 위고의 명작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이기도 한.
정면의 파사드에는 엄청난 수의 조각들이 성서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는데,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대단한 건축물임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엄지 척.
들어가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긴 줄을 보고 바로 돌아섰다.
네명 중 한명도 그래도 기다려보자는 생각 없이.
여행 내내 큰 갈등 없이 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
센 강을 수시로 건너게 된다.
파리는 시티섬이라는 작은 섬에서 출발해 도넛 모양으로 커지면서 발전된 곳이라 센 강 위로 여러 개의 다리가 있는데 다리 이름을 검색해보면서 건너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다리를 건너 노틀담 대성당으로, 다시 다리를 건너 파리 시청으로.
시청은 관공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건물을 자랑한다.
커다란 시계 아래 자유,평등,박애라는 문자가 걸려 있고 창에는 프랑스의 국기가 펄럭인다.
토요일이라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참. 우리가 파리에 있던 날은 토,일,월요일이었는데 월요일까지 국경일이라 (오순절-부활절 후 50일이 되는 날로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날) 문이 열렸는지가 최대 문제였다. 오르셰 미술관은 월요일 휴관, 베르사유도 월요일 휴관, 어디는 공휴일 휴관, 식당도 휴관 및 시간 제한 등 가려는 곳마다 휴관부터 검색해야했다. 자꾸 비교하긴 싫었지만 우리나란 주말이나 공휴일처럼 돈이 되는 날엔 쉬지 않을 것 같은데 휴일 꼬박꼬박 쉬는 관광지라니. 부러웠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기간 동안은 얼마나 야속했는지.
이곳에서 아이스 커피를 잘못시키면 원하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없다.
아메리카노는 카페 알롱제로 말해야 하는데,
잘못하다간 에스프레소나 이런 달달하고 싱거운 커피를 맛보게 된다.
아쉬웠지만 시원한 맛으로.
색색의 파이프와 유리로 이루어진 기묘한 외관을 자랑하는 퐁피두 센터.
파리를 이루고 있는 멋진 건물들 사이에 이런 기괴한 건물이라니.
파리의 대담함이 엿보인달까. 인상적인 건물임은 분명하다.
국립 근대 미술관을 비롯해 도서관, 현대 음악연구소, 영화관, 창조공학센터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명동 거리 같은 복잡한 곳을 뚫고 어렵게 찾은 카르나발레 박물관. 공사중이라니...
16세기 저택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든 곳인데 16~19세기 파란만장한 시대가 전시의 내용이라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책자에 특히 프랑스 혁명 관련 자료는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적혀 있어서. 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우리는 포기도 쉽다. 어쩔 수 없지.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이런 패널을 볼 수 있다. 관광지 근처에서는 물론 우리 숙소 근처에서도.
나중에 책자에서 보니 파리시가 파리 문화재가 있는 767곳에 설치했고, 이 패널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적이 있으니 도보 여행의 이정표로 삼아보라는.
근데 읽을 수가 없으니 그냥 패스...
오늘의 쇼핑할 만한 곳으로 찍어둔 마리아주 프레르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차를 수입한 전통의 홍차 가게.
무려 1,000종류의 홍차를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교수님께 드릴 선물을, 우리는 시어머님과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골랐다.
그리고 여행에서 처음으로 우리를 위한 선물로 하나 더 구입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간 기능이 약화되어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는 남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집에서라도 커피를 줄이고 차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잘 모르지만 이것저것 향을 맡아보다가 그냥 이름이 맘에 들어 얼그레이 프로방스라는 차로 선택.
많이 비싼 건 아니지만 유명한 홍차이기도 하고 파리에서 직접 고른 선물이라 면세점에서 사는 것보다 의미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니, 만족스러웠다.
저녁은 또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이곳에선 대부분 카페 같은 곳에서 피자, 버거, 파스타 등 식사도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커피와 식사를 한번에.
난 그게 너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먹고는 남편과 나는 좀더 둘러보고 돌아가기로 해서 일행과 찢어졌다.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 돌아다닌 시간.
왜 파리의 자유는 복잡함을 전제로 할까?
시골에서, 한적한 곳에서도 자유는 누리는데 왜 자유롭다는 것은 군중이 있음을 전제로 할까?
홍대에서도, 파리에서도 자유라고 표현하는 것은 왜 그런 맥락일까?
이곳은 실내 공간의 부족을 테이블을 야외로 꺼내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 같아.
그러니 실내 인테리어에 큰 돈을 들일 필요도 없지.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든 들어가보자.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보주 광장에 들어섰다.
벽돌로된 건물들이 직사각형의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아름 언니가 이곳에 가면 꼭 누워서 쉬라더니 정말 이곳 잔디밭에는 다들 누워있었다...
아침에도 느꼈지만 지금도. 잔디밭에서 쉬어야 하는데 하며 또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혁명의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바스티유 광장.
1789년 7월 14일, 이곳에 있던 바스티유 감옥이 시민의 습격으로 함락됨으로써 프랑스 혁명의 막이 올랐다.
현재는 탑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광장의 중앙에는 7월 혁명으로 목숨을 잃은 파리 시민을 기리는 7월 혁명 기념탑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7월 혁명과 2월 혁명 희생자들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
광장의 오른쪽에는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오페라 바스티유가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이곳, 파리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물론 세계사적 의미도 있지만) 어떻게 기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낀 하루였다.
우리에게도 4.19 혁명이, 6월 항쟁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기념하고 있을까.
혹시 우리나라에 혁명의 역사,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느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를 찾아갈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고,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잘 기념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역사의 한 축이지 않을까.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화장실도 들르고. 센 강도 건너고.
소르본 3대학도 지나고.
한국 사람들이 꼭 들른다는 몽쥬 약국도 들러보았다.
검색을 통해 이곳에서 사는 게 저렴하다는, 립밤과 달팡 수분크림을 사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둘러보자마자 한국인 판매원이 다가와 "뭐 찾으세요?" "여권 가지고 왔어요?" 묻는 말에 당황...
달팡 수분크림, 말을 꺼내자마자 이리 오라더니 구석 한켠에 가득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어요? 누가 쓸 거예요? 나이 대에 맞게 써야돼요~
생각보다 싸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쏟아지는 판매원의 말을 들으니 조금 더 있다간 예상치 못한 출혈이 있을 것 같아 대충 대답하고 얼른 빠져나왔다. 역시, 동준씨와 훈태씨는 당하고 왔다며 몽쥬약국에서 산 화장품을 한가득 꺼내놓았다.
다들 준비 철저히 하고 방문하시길.
예전에 일본에 갔을때 동네 마켓에서 초밥이며 롤, 계란 샌드위치나 푸딩 등을 파는 걸 보고 너무 부럽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마켓에선 파스타, 바게트 샌드위치, 크로아상 등이 종류별로 가득하다.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