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사랑한다고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고 이상림 씨 딸인 이현선이라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참사가 발생한 20일부터 설연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우리 아버지들을 추모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했던 우리 유가족들은 여러분들이 들어주신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 참혹한 일이 우리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는 일이기에 우리 유가족들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요즘 장례는 3일장을 치르는데 저희들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열흘이 넘게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 일이 막상 해보니 보통 큰일이 아니더라고요. 유가족들 모두 잠도 부족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지만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조문과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머님들과 함께 고인들의 자녀들도 나와 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집회란 곳에 나와 보는 것이 오늘이 처음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아마 평생 집회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집회나 시위에서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많은 분들 앞에서 발언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산 4지구에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 오신 평범한 한 아버지셨습니다. 재개발을 하면서 4지구니, 5지구니 자기들 마음대로 구역을 나누었지, 제가 어렸을 때에는 4지구니 하는 말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식당 일을 하시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습니다. 한자리에서만 30년 동안 장사를 하셨으니 저희 부모님들도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흔을 넘기시며 식당을 호프집으로 리모델링하고 우리 3남매의 막내 부부가 호프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년 전입니다. 막내동생이 바로 용산 4지구 철대위원장으로 어제 구속된 이충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장사는 막내 부부에게 맡기셨지만 그 호프집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모릅니다. 30년 동안 아버지 손길이 묻었던 곳이니 오죽하셨겠어요. 매일 새벽 가게 주변을 청소하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밤늦게까지 장사하느라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간 막내 부부를 대신해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테이블을 손수 닦으시고 나서야 아침식사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통지를 받기 전까지, 용역회사 직원들이 가게를 빨리 비우라며 가게 앞에 쓰레기를 한가득 부어놓기 전까지, 용산구청에서 “생떼거리”를 쓴다며 아버지를 문전박대하기 전까지,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상하시고 따뜻한 아버지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록 가난했지만,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글세 신세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이었습니다. 누가 우리 아버지를 거리로 내몰고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까?
여기 있는 저희들이 아버지들을 이 참혹한 일로 잃고 나서야 이렇게 처음 집회에 나온 것처럼, 아버지도 집에서 쫓겨나고, 30년 동안 장사하던 터전에서 내쫓기게 되시고야 처음 집회에 나가셨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용역들의 폭력을 피해 옥상 망루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운동권”은 바로 이 사회와 부자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용산에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왔던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막내동생 부부가 재개발이 시작되고 운동권이 되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수천 도의 화염 속에서 돌아가시고, 무릎뼈가 다 으스러진 우리 막내가 목발을 짚고 감옥에 갇히게 될 줄을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요즘 저희 유가족들은 아예 TV나 신문을 보고 나면 두통약을 한 알씩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어제도 이명박 대통령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우리 유가족들은 분통이 터져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용산 참사 이야기가 나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들먹이며 동문서답을 하시더군요. 말이 좋아 법이지요.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는 겁니까?
30년 동안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하는 법, 서민들 쫓아내고 비싼 아파트 지어서 수백억,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재벌 기업들을 위한 법, 용역 깡패들이 주민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을 퍼붓고 가게 담벼락에 시뻘건 페인트로 목 매달린 시체를 그려놓아도 내버려 두는 법, 우리 아버지들의 시신을 우리 유가족들이 한번 보기도전에 아무런 동의도 없이 부검을 한답시고 난도질하고도, 검사가 법대로 한 일이니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법, 국민 다섯 명을 죽이고도 정부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법, 그런 법도 법이라고 지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인터넷에는 참 별의별 말들이 다 올라와 있더군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그냥 여러분들과 똑같은 서민들이셨습니다. 많이 배우시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신 분들도 아닙니다. 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부당하니 부당하다고 말하고 살기 위해 싸우신 것밖에는 없습니다. 혼자 싸우기 힘에 벅차니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싸운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재개발이 주범입니다. 재개발을 부추기는 정부와 재개발로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 기업들이 주범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해온 경찰과 용역들이 주범입니다. 여러분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주범들은 가만히 두고 검찰은 우리 철거민들만 구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우리 아버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끼리는 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힘이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이 함께 있어주시는 한 지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혹시 사랑한다는 말 얼마냐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두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님한테는 한 번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말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 마디 '사랑해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번만 아버지 손을 잡고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009년 1월 31일
이현선
저는 고 이상림 씨 딸인 이현선이라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참사가 발생한 20일부터 설연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우리 아버지들을 추모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했던 우리 유가족들은 여러분들이 들어주신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 참혹한 일이 우리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는 일이기에 우리 유가족들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요즘 장례는 3일장을 치르는데 저희들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열흘이 넘게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 일이 막상 해보니 보통 큰일이 아니더라고요. 유가족들 모두 잠도 부족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지만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조문과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머님들과 함께 고인들의 자녀들도 나와 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집회란 곳에 나와 보는 것이 오늘이 처음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아마 평생 집회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집회나 시위에서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많은 분들 앞에서 발언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산 4지구에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 오신 평범한 한 아버지셨습니다. 재개발을 하면서 4지구니, 5지구니 자기들 마음대로 구역을 나누었지, 제가 어렸을 때에는 4지구니 하는 말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식당 일을 하시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습니다. 한자리에서만 30년 동안 장사를 하셨으니 저희 부모님들도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흔을 넘기시며 식당을 호프집으로 리모델링하고 우리 3남매의 막내 부부가 호프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년 전입니다. 막내동생이 바로 용산 4지구 철대위원장으로 어제 구속된 이충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장사는 막내 부부에게 맡기셨지만 그 호프집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모릅니다. 30년 동안 아버지 손길이 묻었던 곳이니 오죽하셨겠어요. 매일 새벽 가게 주변을 청소하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밤늦게까지 장사하느라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간 막내 부부를 대신해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테이블을 손수 닦으시고 나서야 아침식사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통지를 받기 전까지, 용역회사 직원들이 가게를 빨리 비우라며 가게 앞에 쓰레기를 한가득 부어놓기 전까지, 용산구청에서 “생떼거리”를 쓴다며 아버지를 문전박대하기 전까지,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상하시고 따뜻한 아버지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록 가난했지만,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글세 신세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이었습니다. 누가 우리 아버지를 거리로 내몰고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까?
여기 있는 저희들이 아버지들을 이 참혹한 일로 잃고 나서야 이렇게 처음 집회에 나온 것처럼, 아버지도 집에서 쫓겨나고, 30년 동안 장사하던 터전에서 내쫓기게 되시고야 처음 집회에 나가셨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용역들의 폭력을 피해 옥상 망루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운동권”은 바로 이 사회와 부자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용산에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왔던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막내동생 부부가 재개발이 시작되고 운동권이 되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수천 도의 화염 속에서 돌아가시고, 무릎뼈가 다 으스러진 우리 막내가 목발을 짚고 감옥에 갇히게 될 줄을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요즘 저희 유가족들은 아예 TV나 신문을 보고 나면 두통약을 한 알씩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어제도 이명박 대통령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우리 유가족들은 분통이 터져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용산 참사 이야기가 나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들먹이며 동문서답을 하시더군요. 말이 좋아 법이지요.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는 겁니까?
30년 동안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하는 법, 서민들 쫓아내고 비싼 아파트 지어서 수백억,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재벌 기업들을 위한 법, 용역 깡패들이 주민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을 퍼붓고 가게 담벼락에 시뻘건 페인트로 목 매달린 시체를 그려놓아도 내버려 두는 법, 우리 아버지들의 시신을 우리 유가족들이 한번 보기도전에 아무런 동의도 없이 부검을 한답시고 난도질하고도, 검사가 법대로 한 일이니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법, 국민 다섯 명을 죽이고도 정부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법, 그런 법도 법이라고 지키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인터넷에는 참 별의별 말들이 다 올라와 있더군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그냥 여러분들과 똑같은 서민들이셨습니다. 많이 배우시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신 분들도 아닙니다. 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부당하니 부당하다고 말하고 살기 위해 싸우신 것밖에는 없습니다. 혼자 싸우기 힘에 벅차니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싸운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참사는 재개발이 주범입니다. 재개발을 부추기는 정부와 재개발로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 기업들이 주범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해온 경찰과 용역들이 주범입니다. 여러분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주범들은 가만히 두고 검찰은 우리 철거민들만 구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우리 아버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끼리는 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힘이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이 함께 있어주시는 한 지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혹시 사랑한다는 말 얼마냐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두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님한테는 한 번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말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 마디 '사랑해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번만 아버지 손을 잡고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009년 1월 31일
이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