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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서는 매일 11시 신생아실 청소를 할 시간이면, 아기를 방에 데려와야 한다. (그외 시간에 더 데려와도 되지만 그 시간에는 꼭) 

오늘은 첫날. 모유 수유할 때 말고는 동동이를 안거나 둘이 있는 건 처음이라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 나만 긴장하고 우리 동동인 세상 모르게 잘 잤지만. 

신랑이 마침 방에 오자마자 동동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동이를 안아 보았다. 전에 조카도 썩 잘 안 길래 동동이도 거뜬히 쉽게 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신생아라 그런가, 한쪽 손은 어쩔 줄을 모른다. 

방에 와서 울면 어쩌지, 잠에서 깨면 뭘 해야하지 걱정이 많았는데 첫 날은 무사히 넘겼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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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가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율혈이 있거나 통증이 있거나 젖이 없거나 하진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지만, 그래도 어렵다. (오늘 방문한 유방실장님도 가슴도 좋고 젖도 잘 생길 거라고 했다.) 

젤 어려운 건 아기가 배고프대서 젖을 물리면 금방 잠든다는 것이다. 엄마 품에 안기면 아기들은 금방 잠드니 깨워주면서 먹여야 한다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귀도 만져보고 발도 만져보고 엉덩이를 주물러도 보는데 어쩜 그렇게 금방, 푹 잠드는지. 5분, 10분 정도 먹으면 더 이상 깨우는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푹 잠든다. 이게 맞는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내가 못 깨우는 건지 이렇게 저렇게 진땀을 빼며 해보다가 결국 간호사에게 동동이를 맡기고 돌아선다. 1시간 수유실에서 진땀을 빼지만 정작 동동이가 빠는 시간은 10분 남짓 정도. 수유실서 돌아오면 식은땀과 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서 좀 쉬어줘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덜 자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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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는 다행히도 크게 아픈 덴 없지만 주의깊게 봐야 하는 증상 몇 개가 있다.ㅠㅠ 

일단 선천성 이루공을 갖고 태어났다. 귀에 작은 구멍이 보이는 것인데 저절로 메워지진 않는단다. 

놀란 마음에 폭풍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았다. 통증이 있거나 눈에 띄는 정도가 크진 않지만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잘 씻고 특히 잘 말려주는 게 핵심일 듯. 염증만 생기지 않는다면 아무 이상 없다는 어느 글을 보고 안심을 하긴 했지만 수술을 해서라도 제거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 벌써 걱정이다. 

피부 건조한 건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발바닥에는 듀오덤을 붙여놓았다. 맨발에 붙여놓으니 발을 비벼가며 떼어서 동동이만 양말을 신겨 놓았다. 선천적인 것 같지는 않고, 양수에 오래 있었기 때문이라며 곧 나아질 것이라고 해서 너무 다행이지만 하얗게 일어나는 피부를 볼 때마다 안쓰럽다.

음낭수종(고환에 물이 차있는 증상)도 있다. 곧 흡수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신경은 쓰인다. 

찾아보니 신생아들에게 많이 생기기도 하고, 첫돌까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되면 치료 받아야 함)

오늘은 또 동동이가 변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물똥이라 좀 지켜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애들에 비해서 변을 많이 보는 편인데 다 물처럼 싼다며. 다행히 몸무게가 줄고 있진 않아서 별일은 없어 보이지만, 일단 며칠 두고 보자고. 만약에 며칠 지나도 계속되면 모유를 잠깐 멈추거나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신생아실에 동동이가 안 보인다 싶었는데 저 안쪽 '사전 관찰실' 쪽에 있었던 거였다. 

팀장이 변 증상 이야길 하는데 순간 울컥.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벌써 울거나 나약해지면 안되는데, 아기가 조금이라도 안 좋다는 말에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구나 싶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주는 것만도 정말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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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름은 정했지만 조리원에서는 동동이로 부르기로 했다. (나 혼자) 

조리원 간호사들이 "동동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듣기 좋고, 아직 서진이보다 동동이가 덜 어색하고, 천천히 동동이란 이름을 보내주고 싶은 아쉬움도 있고. 

Posted by 생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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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6일. 오전 11시 13분. 3.36kg. 

동동이가 태어났다.  

자연진통도 느끼고, 촉진제도 써보고, 그리고 결국 수술. 골반과 아기 머리가 맞지 않다는 결론으로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원래 자연분만에 대한 자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골반도 작다고 하고 고관절 등 하체 근육이 워낙 뻣뻣해서) 수술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사쌤 말에 '어쩔 수 없구나'는 생각으로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수술은 입원기간이 5박 6일인데 신랑 출장과 맞추기 위해 입원을 하루 연장해 6박 7일 입원 후, 조리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조리원 하루 연장을 부탁했는데 확답을 주지 않아서 성질 급한 우리는 입원을 하루 연장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대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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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라는 말이 있다던데, 무슨 말인지 충분히 느낀 입원기간이었다.  

주변에 수술한 사람이 많아서 사실 수술이 자연분만보다 덜 무서울 것 같기도,  한편으론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게 미안할 정도로, 수술은 수술이었다. 하긴, 생 살을 갈라서 아이를 꺼냈으니 보통 일인가. 자연분만의 고통에 대한 출산후기만 봐서 겁을 먹었었나보다.  

그래도 다행히 수술 후 회복은 정상적으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수술 다음날부터 소변줄을 빼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누웠다 일어날 때, 침대에서 첫 발을 디딜 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배를 가른 고통이 엄청났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빨리 회복된다는 말에 나름 열심히 움직였다. 덕분인지 퇴원할 때쯤엔 걷는 건 크게 무리 없을 정도로 (물론 천천히 걷고 있지만), 혼자서 누웠다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물론 달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게), 누워서 왼쪽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낑, 윽, 소리를 내면서) 많이 회복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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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는 하루가 다르게 인물이 좋아지고 있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처럼 태어났을 땐 쭈글쭈글해서 수술 후 비몽사몽인 그 와중에도 '엇, 우리 아기는 주름이 많은 아기인가'라고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는데 하루하루 지날 수록 깔끔해지고 아빠를 쏙 빼닮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41주에 태어난 동동이는 양수에 오래 있어서 얼굴이며 몸이 많이 건조한 편이라 신생아실에서 오일을 듬뿍듬뿍 발라준다. 좀 건조할 수 있다는 말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느날은 "산모님 이것 좀 보세요" 하더니 발바닥 주름마다 피가 고인 걸 보여주면서 너무 건조해서 이렇다며 듀오덤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신랑도, 나도 다행히 아토피는 없지만 내가 피부가 건조하고 피부묘기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터라 혹여나 건조한 게 선천적이어서 아토피로 발전할까봐 그날은 '신생아 건조 관리'를 엄청 검색했다.  

12월 마지막 주쯤 유도분만을 예상하면서 별 문제가 없을 경우, 아예 새해에 낳으면 어떨까 생각했던 게 참 미안했다. 1주일만 늦어도 이렇게 건조해서 고생(?)하는데 그런 생각은 못하고 더 있다가 낳을 생각까지 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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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드디어 '서진'으로 정했다. 펼 서, 베풀 진. 뜻을 펼치고 베풀며 살란 뜻이다.  

후보에 있었던 돌림자들이 동동이 사주와 맞지 않다고 해서 추천 이름을 받았는데 다행히도 '서진'이 뜻도 음도 마음에 쏙 들어 결정!  

남편과 많은 토론의 과정도 있었고, 어머님이 직접 이름을 받으러 고생해주셨고, 과정도 결과도 갈등없이, 또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 이름인만큼 '서진'으로 정하고 남편과 많이 기뻐했다. 나중에 서진이도 커서 자기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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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하고 얼마 후에 우연히 어떤 글과 영상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하나는 유산의 경험과 관련된 글이었고, 또 하나는 엄마가 아기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뇌사상태에 빠진 사연이 담긴 영상이었다.  

동동이가 10달을 배 속에서 잘 있다가 건강하게 우리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나도 무사히 회복해 동동이를 품에 안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임신 기간도 그랬지만 지금도 바라고 바라는 소망은 오직 하나. 

부디 밝고 건강하게만 잘 커주었으면 하는 당연한 마음 뿐.

Posted by 생숭이

/. 12월 27일(수). 수술후 +1. 

아침 동동이 면회는 신랑 혼자 다녀왔다. 영상을 찍어 왔는데 정지화면인 줄... 세상 모르고 잘 자는 동동이. 

담당쌤이 아침에 들르셔서 오전에 소변줄 떼고 빨리 아기 보러 가라고 하셨다. 10시~11시쯤 소변줄을 떼고 조금 움직여 보았다. 생각보다 더 어지럽다더니 정말... 칼로 배른 자른 고통을 느끼며 침대에서 겨우 발을 내딛어 잠깐 서 있었는데, 머리가 핑 돌면서 쓰러질 뻔... 그래도 불굴의 의지로 점심 면회엔 동동이를 보러 갈 수 있었다. 



/. 12월 28일(목). 수술후 +2.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사실 시작이라기보다 '시도'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제대로 빨긴 한 건지...     

아침엔 죽이 나오더니 점심은 처음으로 일반식이 나왔고, 신랑도 미리 얘기해서 병원식으로 같이 먹었다. 신랑은 미역국을 좋아하는데, 다른 국을 줘서 실망, 닭다리도 하나밖에 안 줘서 실망. 환자식으로는 괜찮은데, 일반 사람들이 먹기엔 부족할 만했다. 

그리고 일반식과 함께 축하 케잌까지. 인제 케잌도 먹어도 되나보다! 

오후엔 항생제 주사를 맞고 수액(링거)을 뺐다. 그리고 점심(밥) 먹고 괜찮았으니 밖에서 간식 사와서 먹어도 된다고도 했다. 오!!

오늘은 면회가 두 팀 있었다. 오후엔 신랑 연수원 동기들이 찾아와주었고, 저녁엔 동생이랑 올케가 와서 같이 동동이 면회를 했다. 멀리 와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아이 둘 키운 부모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당장 뭘 해주는 건 아닌데도 새삼 힘이 되었다.    



/. 12월 29일(금). 수술후 +3.

링거를 뽑고 움직임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고통은 여전했지만, 불편함은 덜 했다.

오늘은 면회 오는 사람이 없는 날이어서 오전 오후에 휴식도 하고, 잠도 더 자고, 밤엔 신랑이랑 TV도 보면서 여유있게 보냈다. 

신랑 출장 일정과 조리원 퇴소 일정을 맞추기 위해 입원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 조리원에서는 확답을 못 준다기에, 담당쌤한테 얘기해서 입원을 하루 더 할 수 없냐고 했는데 역시 쿨한 담당쌤은 OK! 해주셨다. 

외래 진료에서는 수술부위도 깨끗하고 초음파도 이상 없다고 했다. 지난주까지 임산부로 이 곳을 찾았었는데, 이젠 산모로 오다니.     


/. 12월 30일(토). 수술후 +4.

오늘은 아침부터 바쁜 날이다. 아침, 점심, 저녁 면회 다 손님들이 예약되어 있었고, 특히 큰어머님과 작은 고모님이 오신다!

아침을 먹고 수술 후 처음 머리를 감고, 신랑은 우리 부모님과 아침을 먹고 같이 병원으로 왔다. 엄마, 아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동동이가 더 작고 예쁘다며~

엄마,아빠가 가시자마자 쉴 틈 없이 신랑은 또 역으로 큰어머님과 작은 고모님을 모시러 갔고 두분도 동동이를 보시며 "우리 동동이가 젤 예쁘네" 민망한 칭찬까지. 나는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하고 또 수유콜을 받고 동동이에게로. 

저녁엔 대환이가 수원에서 와주었다. 민폐아니냐 하지만 그래도 와준 게 고마운 '참후배'. 지윤씨도 일산 가는 길에 들렀다며 대구에서 사온 맛있는 빵을 주고 갔다. 신랑도, 동동이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고마운 하루였다.     


/. 12월 31일(일). 수술후 +5.      

2017년 마지막 날이다. 좀 답답한 마음에, 신랑과 햇살이 비치는 '복도'를 산책했다. 

"올해 마지막 날과 새해 첫 날을 병원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네"

"몰랐어? 그럼?"

"아니. 뭐 실감을 못 했달까."

오후엔 병원 퇴원 설명과 조리원 생활 설명을 들었다. 보호자 변경은 다시 부탁했지만 역시 안된다고 하여 깔끔히 접었다. 

저녁엔 친정식구들이 우르르 병원으로 놀러(?) 왔다. 엄만 내가 혼자 조리원에 있을 생각에 안쓰러우셨는지, 그 전에 몇번이라도 더 보러 오고 싶어하셨다. 내일 아침도 오시겠다는 걸 시동생이 예약되어 있어 참으신 듯. 

병원에서 윤아는 왤케 활발히 잘 노는지. 

식구들이 돌아가고 신랑과 둘이 어머님이 사주신 타르트 조각과 오렌지 쥬스를 나눠먹으며 괜히 연말을 보내는 분위기를 내어 보았다. 평소 같으면 일찍 잠들었을텐데 12시 정각 타종 소리도 듣고. 올해도 고생했다 한마디도 나누며.

돌아보니 2017년에 큰 일들이 많았다. 한참된 줄 알았는데 결혼도 올해였고, 연말에 출산을 했으니 한해를 거의 동동이와 함께 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새 전망을 그려보려 새로운 곳에서 일한 것도 올해였다. 

마스다미리 <차의 시간>에 보면 "목숨 걸고 사람 하나를 낳은 사람의 1년과는 경험치에서 비교가 안 되지."라는 말이 나온다. 늘 연말마다 뭘 잘했나, 뭘 못했나 평가하며 괴로울 때가 많았는데 올핸 괴로울 틈 없이 사람 하나를 낳은 1년으로 2017년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옆에서 늘 함께 해준 신랑에 대한 소중함이 더 커진 한 해였다.    


  

/. 1월 1일(월). 수술후 +6. 

오늘도 바쁜 오전을 보냈다. 

우리집은 신정을 쇠다보니 신랑이 7시에 일어나 집에 들러 씻고, 처가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고 왔다. 

그리고 10시쯤 시동생과 함께 돌아왔고 곧 이모님과 사촌시동생들도 와주셨다. 면회 시간이 좀 지났지만 조리원으로 이동하는 틈에 동동이를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조리원에 들어왔다. 오자마자 점심 먹고, 수유하고, 유축 배워 유축하고. 저녁 먹고 또 2번 불려가 수유하고. 

어머님이 집에 오셔서 청소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시고, 나 먹을 야식이며 반찬을 챙겨 보내주셨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신랑과 영애씨 재방을 보고 일부러 늦게 늦게 잠들었다.  


Posted by 생숭이

#봄여성병원 #제왕절개 #수술은_할부의_고통


/. 디데이 

26일 오전 7시에 유도분만 예약을 해놓았으니 26일, 늦어도 27일엔 동동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연휴. 

며칠째 계속 피가 나는 게 불안해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병원을 급하게 찾았다. (이슬이면 갈색에 점성이 있다는데, 난 새빨간 피가 생리처럼 며칠 계속되었다)

당직쌤에게 진료를 받고, 초음파, 태동검사를 했고, "이슬인 것 같다", "태동이나 아기 심장박동에는 이상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24일 밤부터 좀 심한 생리통 같은 통증을 느끼며 '아 이게 가진통인가' 하면서 좀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인제 진짜 D-1이다. 조금씩 잦아지는 허리통증을 견디면서 샤워를 하고, 집 청소를 하고, 신랑 출장 짐을 같이 싸고. 저녁엔 크리스마스 저녁이자 둘로서의 마지막 만찬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뭘 먹을지 한참 고민하다 동동이를 가진 걸 확인하고 갔던 매드포갈릭에 가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확인했음에도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신랑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던 기억, 그 말을 듣고 "진짜? 진짜?" 확인하던 신랑의 대답, 그리고 뭔가 모를 설렘으로 기분이 좋았던 그날을 생각하면서 동동이를 맞이하고 싶었달까. 사실 무엇보다 당분간 분위기 잡고 못 먹을 곳에 가서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리통증은 밤부터는 더 잦은 주기로 찾아왔다. 진통측정기 앱으로 측정을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파서 놓치기도 하고 어떨땐 주기가 조금 길어지기도 해서 일단 병원은 (어차피 7시에는 가야하니) 최대한 아침에 가는 걸로 생각하고 참아보기로 했다. 초산은 진통 주기가 5분 이내여야 병원에 오란 말을 들었던 터였다. 주기는 그렇다고 하나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동안 진통을 못 느낄까봐 걱정했을 때 출산 선배들이 "걱정하지마라, 그 고통은 모를 수가 없다"고 했던 말이 딱 맞았다. 그래도 좀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새벽 3시부턴 이젠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고통에 이르렀고 신랑도 5시쯤엔 깨서 옆에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복식호흡을 하면 그래도 좀 진통이 나아지는 것 같긴 했다. 어떻게 그 새벽을 보냈는지. 5시 좀 넘어서 일찍 씻고 그래도 밥은 먹어야겠기에 신랑이 데워준 갈비탕과 밥을 챙겨먹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일부러 손 잡고 천천히 걸어서 갔는데 6시 반 정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가자마자 옷 갈아입고 수액을 맞기 시작하고. 조산사가 내진을 했고 바로 관장을 했다. 굴욕 세트라고 긴장을 꽤 했었는데 사람들 말대로 그런 생각을 느낄 겨를 없이. 며칠 전부터 변을 못 보고 있었는데, 난 혹시나 관장을 하고 나면 진통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옛날에(중학교때)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관장하고 나아졌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여튼 관장을 좀 기대(?)했는데 이상하게도 약물을 투여하고 10분이나 참았는데도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거슨 관장과 전혀 상관없는 진통이었나보다.)

어차피 오늘 낳을 생각으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었으니, 자연진통이 오긴 했지만 촉진제를 좀 쓰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8시 정도부턴 극심한 허리 통증을 느끼며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담당쌤이 오셔서 또 내진. 아파서 소리를 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진하시더니 너무 아프면 무통주사를 줄테니 좀 보자고 하셨다.   

9시반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무통주사를 알아서 주셨다. 마취과 의사쌤이 오셔서 척추에 놓긴 하지만 안 아프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팔뚝주사 정도다... 말을 많이 해주셔서 좀 안심하긴 했으나 척추에 주사를 놓다는 게 그 아픈 와중에도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무통주사를 맞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뿐. 담당쌤이 한 2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라며 11시쯤 보고 판단해보자고 하셨다. 무통주사를 맞고 잠깐 괜찮은 것 같더니, "오, 정말 무통주사빨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할 찰나 다시 진통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무통주사빨이 오래 가지 않았던 듯. 1시간도 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11시쯤 담당쌤이 오셔서 다시 내진해보시더니 그대로라고 (아기가 안 내려온다고) 수술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신랑과도 수술을 염두해 둔 이야길 했었기에 신랑과 바로 수술을 결정했다. 간호사들이 신랑을 불러 신생아 검사에 대해 문의하는 사이, 난 간호사들에게 이끌려 수술실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신랑은 "화이팅" 한번 외쳐주고 수술실로 보내려 했는데 돌아보니 난 이미 수술실로 갔다고. 나도 신랑 얼굴 한번 보고 수술 들어갈 줄 알았는데 어느새 팔은 붙들려 있고 하반신 마취가 시작되었다. 수술을 생각하긴 했었지만 위 내시경 같은 것도 해본 적 없는 터라, 막상 수술대에 누우니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신랑 손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 찰나, 담당쌤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해준 말이 꽤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마취가 제대로 안 되는 건 아닐지, 하반신은 마취가 되어도 정신은 또렷해서 칼 소리며 배를 가르는게 다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을 했었는데, 어느 새 다리가 저린 게 느껴졌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몸이 몇 번 당기는 느낌이 나더니 “아기 나왔어요”라는 마취쌤의 말이 들렸고 옆으로 옮겨진 아기의 “~애, ~애”하는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기가 나왔구나’ ‘아, 별말 없는 걸 보니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다 있나보다’

몽롱한 와중에도 다행이라는 안심을 할 때쯤 마취쌤이 “아기 똑똑해요.” “좀 잘게요” 하시면서 재워주셨다. (신랑 말로는 수술 들어간지 10여분 후 아기가 나왔다고 한다.)   

눈을 뜨고 정신이 좀 들랑말랑 할 때쯤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와 보여주며 “동동이에요. 산모님. 동동이가 양수에 오래 있어서 좀 건조해요. 오일을 많이 발라줄게요.”하며 내 뺨에 동동이 뺨을 갖다대주었다. 그리고 “젖도 한번 물려볼까요?”하며 가슴에 대주었는데 동동이가 바로 울어버렸다... 드라마에서나, 많은 후기에서나 아기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감동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는데 우리의 첫 만남은 어색과 얼떨떨...? 

조금 후, 신랑이 회복실로 들어왔다. 사실 동동이와의 만남보다 신랑이 빨리 보고싶었다. 내가 회복실 들어와서 코골고 자더라는 말을 웃으면서 첫 마디로 해준 신랑. 난 아마 동동이 봤냐는 말을 제일 먼저 했던 것 같다. 한 두어시간 있었나,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3층 회복실에서 7층 입원실로 이동. 일찍 와계신 어머님과 신랑이 보였고 어머님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수고했다”고 해주셨다. 

수술 당일은 되려 큰 고통 없이 지나갔다. 요즘은 수술 후 무통주사 덕분에 마취가 깨도 덜 아프다고 하더니 덕분인지. 

같이 영애씨를 보기로 했던 신랑은 피곤했는지 9시쯤 누웠다가 금새 잠이 들었다. 리모콘 작동이 안돼서 채널변경이 안되어 핸드폰으로 영애씨를 보는데 금방 꺼지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잠들었다 눈 뜨면 겨우 30분에서 1시간 밖에 안 지나있었고 심심하고 등은 아프고 새벽 3시쯤 안 되겠어서 다시 TV를 켰더니 동물 프로그램을 하고. 핸드폰은 꺼져 있고. 목이 너무 말라서 자는 신랑을 10번 정도 불렀으나 못 듣고 잘 자고. 결국 5시쯤 신랑을 깨워 물을 마시고 같이 이름을 토론하며 둘째날 아침을 시작했다. 

Posted by 생숭이

# 하루하루.

예정일은 지나가고 매일 신랑도, 나도 한 두통의 카톡을 받는 것 같다. 애는 낳았는지, 소식은 없는지... 부모님들이나 할머님께는 안부전화겸 드리려고 해도 혹시 병원갔나 하고 놀라실까봐 쉽게 전화도 드리기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나는 다행히 불안하거나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는 것 같은데, 신랑은 빨리 동동이가 보고싶은가보다. 어차피 늦어지는 거 아예 다음주 26~27일쯤 나와서 신랑 출장 일정과 조리원 일정이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느 블로그에서 막상 출산하려고 하니 시원섭섭하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뱃속에 품고 있다가 밖으로 내어놓는 느낌? 인제 태동도 느낄 수 없다는 섭섭함과 보고싶다는 마음이 섞여있다는) 나도 혹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고싶으면서도 뭔가 괜시리 아쉽기도 한. 하도 육아가 전쟁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육아보다 품고 있는게 낫다는 생각인건가... 

어쨌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계획을 세우긴 어렵고 매일 눈을 뜨면 "오늘은 뭐할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창 날씨가 춥고 길도 미끄럽고, 의사쌤이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델 걸으라고 해서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 쇼핑몰들을 섭렵하는 중이다. 가고싶은 데 가고, 맛있는 거 찾아 먹으러 다니다보니 신랑은 신혼여행을 온 것 같다고도 했다. 예상했던 시간을 넘기다 보니 외식비도 만만치 않아 인젠 동동이가 나와야 될 것 같은...ㅠ 

다행히 지난번 병원에 갔을때 동동인 3.1kg로 크지 않았지만 막달 방심하는 사이에 확 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들 했었다. 미연언니는 막달엔 과일도 일부러 안 먹었다며. 나도 신경을 좀 쓰려 했지만, 막상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그 순간 먹고 싶은 걸 찾게 된다. 

폴바셋 음료 쿠폰을 쓰려 한건데, 타르트와 슈크림까지 왜...;;;; 




거의 10년? 만에 학교 앞 삼호정 순두부를 먹으러. 전부터 생각나서 벼르다 찾았는데, 맛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예전 배고프던 시절, 선후배들과 시켜먹던 그 느낌과 그 맛이 살진 않았다. 




어느날은 도저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질 않아 뷔페를 찾았다. 구운 자몽이나 잔치국수를 먹을 생각으로 애슐리를 갔는데 둘다 없다니!! 배불러서 기분 안 좋았던 날. (응?)




다음날 점심에 찾은 장어집. 인생 장어집이었다!!! 사실 장어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메뉴와 새로운 장소를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는데, 이렇게 고급스러운 장어집이라니!!! 분위기도, 맛도 완전 만족. 다음번 가족 회식 장소로 점 찍어두었다. 돌아오는 길에 헤이리에서 밀크티도 한잔.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겉옷을 벗고 있었는데도 땀이 날 정도였다. 




신랑 친구분이 준 기장 미역. 산모미역이라며 나중에 칼로 자르지 말고 먹으라는데, 이건 1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먹는 건지...;;; 



# 40주+3일. 이슬이 비치다. 

정기검진이 있던 날 아침. 비쳤다고 하기엔 좀 촉촉할 정도로 피가 났다. 찾아보니 이슬은 갈색혈에 덩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던데 나는 그냥 빨간? 선홍색?에 덩어리도 없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일단 오후 검진때 오면 될 것 같다고 해서 애써 침착하게 생각하며 혹시 모르니 오전에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샤워는 기본이고, 신랑은 방과 마루 청소에, 베란다 청소까지. 나도 빨래를 개고, 또 빨래를 하고, 신랑 출장 짐도 대충 정리해놓고. 

그러고나니 둘다 헉헉 지칠 때가 되어 혹시 마지막 만찬이 될 지 모른다며 먹고 싶은 걸 생각해내고 싶었지만 마땅치 않아 짜장면을 시켜 먹고. 가는 길에 이디야 토피넛라떼를 먹고 싶다고 했으나 예약 시간이 빠듯해 바로 병원으로. 

의사쌤이 두번째 내진을 해보더니 아직도 자궁문은 열리지 않았고 애도 안 내려왔다고 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골반이 좁아서 애가 못 내려오고 있다며.ㅠㅠ 그러면서 다음주에 유도분만 날짜를 잡자며 일단 자연분만을 시도해보자고 했다. 조선시대 같았으면 그래도 다 분만 했다며, 수술할 가능성도 있긴 한데 일단 시도해보자고...

병원을 나와 신랑과 토피넛라떼를 한잔. 

혹시 오늘 볼 수 있을까 신나했던 신랑은 조금 차분해졌고 병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을까 궁금해할 가족들을 위해 연락을 돌렸다. 

난 무엇보다 골반이 좁다는 말이 계속 맴돌아 걱정이 된다.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출산을 코앞에 두니 골반이 좁아도 자연분만이 가능한 건지,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수술하는 건 아닌지, 그냥 수술하는게 나은 건 아닐지... 무서운 건지, 걱정인 건지 모를 감정이 쉽게 떠나질 않아서 괜시리 더 예민해지고 있다. 게다가 아예 26일 유도분만 날짜까지 조용하면 좋으련만 이슬이 비친 걸 보니 혹시 연휴에 진통이 생겨 병원을 찾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크리스마스까지 별일 없이 보내고 26일에 병원을 찾게 되길, 아니 그보다 당연히 고통은 있겠지만 건강하게 동동이를 만날 수 있길. 이 생각만 하자... 


마지막 만찬인 줄 알았으나 그냥 점심... 




즘 맛있어하는 토피넛라떼. 카페인 없대서 먹기 시작했는데 조금 있긴 있네...;;; 


Posted by 생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