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이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결혼선물을 많이 요구(?)하지 않았는데, 한달을 살고보니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 자주 마시는 커피잔, 아침을 서두르게 만들어주는 벽시계, 밥솥, 오븐 모두 선물받은 것들이다. 보람이는 멀리서 천연 비누와 향을 보내줘 요즘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초를 키고 있고, 카오리상은 일본에서 머그컵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 고맙기도 하고, 잘 살아야만 할 것 같은 다짐도 생기고. 그래서 결혼선물을 주는거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당연하게 받지 말아야지.
우리의 아침 밥상. 밥을 차릴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그도 빨리 출근해야 하기에 아침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이젠 조금 덜 힘들게 일어나고 피곤함과 졸음에도 익숙해졌다.
목표는 5시반쯤 이지만 늘, 거의, 대부분 5시 50분쯤 (가끔은 더 늦기도) 겨우 일어나 대충 씻고 빵을 준비하고 사과를 깎는다. 6시 10분쯤 그를 깨워 10분~15분 정도 아침밥을 같이 먹고 나는 6시 40분쯤 먼저 출근길에 나선다. 그도 처음에는 조금 여유롭게 신문도 보고 설거지도 해놓고 출근했으나 요즘은 스터디를 시작해 곧바로 씻고 나서는 것 같다.
얼마전 '사이 좋은 부부' 관련된 글을 봤는데 아침을 같이 시작하는 게 중요하단다. 다행히 여유롭진 못해도 대부분 아침을 같이 먹긴 하니, 우린 잘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요즘엔 내가 늦게(?) 일어나서 식탁에 앉지도 않고 왔다갔다 하며 사과를 먹거나 그럴 틈도 없이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좀만 더 부지런떨어야겠다 다짐해본다.
3월에 한 요리
그와 처음 식사를 위해 한 요리(?)는 스팸 김치찌개였다. 퇴근 후 부랴부랴 밥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집에 오면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머리 속에서 떠올려본 후 뭘 할 수 있을지 그림을 그려보고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육수까지 냈고 맛 없기 힘들다는 스팸까지 넣었는데 더럽게 맛이 없었다....... 국물맛도 오묘하여 이게 김치찌개 맛인지 차마 그에게 먹으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였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남편은 '먹을만하다'며 밥 한그릇을 다 먹어주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후 아직 김치찌개는 도전을 못 하고 있다.
쉬는날엔 불고기가 먹고 싶다는 남편을 위해 예전에 배웠던 레시피대로 뚝딱뚝딱 해보았는데짠 게 문제. 불고기를 재웠을 때 양념이 충분하지 않아 보여서 간장 양념을 두어숟갈 더 넣었는데 그 때문인가보다. 기본 정량대로 하고 싱거우면 요리 도중에 간장을 더 넣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그래도 이건 자신감을 떨어뜨릴 정돈 아니었고 추후 과제를 찾는 정도. 그날 남은 불고기는 그가 늦을 때마다 무려 두번이나 더 물을 넣고 떡을 넣어서 불고기 떡볶이를 해먹었다. 한번 먹을 만큼을 세번으로 나눠 먹은 셈.
그외에는 대부분 아침을 위한 것들이었고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찾아왔을 때 멋지게 차려내었으나 사실 내가 한 요리는 계란말이와 닭가슴살 가지말이구이 정도. 메인 요리였던 불고기와 갈비는 다 친정 엄마가 해주셔서 냉동실에 있던 것을 꺼낸 것이다. 주실 때는 '이거 언제먹나' 했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요긴하게 잘 썼다. 불고기 같은 건 시간있을 때 미리 해두어 냉동실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 잘 써먹는다는 엄마 말을 따라 나중에 꼭 그래야겠다 생각...했으나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여튼 다행히 잘 드셔주셨고 칭찬도 받았지만 요리 실력이 아니라 '플래이팅'의 힘이었음을 고백한다.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오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렌지 겸용으로 산 것이었으나 렌지 없었으면 큰일났을 뻔. (햇반 데우는 데 2~30분씩 걸린다는 걸 사고나서 알았으니.)
란쌤 덕분에 베이킹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없어져서 집에서 머핀인지, 마들렌인지를 만들어보았다. 마들렌 재료와 방법이었는데 굽는 것만 머핀틀에. 난 너무너무 맛있었는데 남편은 그 정돈 아니었나보다. 자주 먹고 싶은데 귀찮아서 더 만들어먹진 못했다. 그왼 계란빵, 계란모닝빵, 프리타타를 해보았는데 사진은 다 그럴듯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느꼈다. 특히 프리타타는 TV, 블로그에서 봤던 것처럼 절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밥솥 카스테라도 나만 실패한 듯. 둘다 곧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설거지는 거의 남편의 몫이다. 결혼 전부터 설거지는 잘 할 수 있고, 좋아한다(?)며 본인이 맡겠다고 먼저 자처를 했다. 결혼하고 내가 혼자 먹은 거 말고는 거의 남편이 도맡아 했다. 꼼꼼한 성격처럼 설거지도 나보다 훨씬 깔끔하게 잘 하는 듯.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니 요리할 때도 덜 스트레스 받고, 먹으면서도 '아 이거 언제 또 치우지' 하는 부담이 덜하니 너무너무 좋다. 특히 퇴근하고서 쌓여있는 설거지가 없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초보 주부.
결혼하고 노력한 것은 사소한 것들을 귀찮아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남편이 대충 대충 하는 걸 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아하기 시작하면 집이 곧 엉망징창이 될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의 깨끗함과 정돈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 컸던 것 같다. 주방 살림도 좀만 노력하지 않으면 재료들을 오래 보관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되니 '양파 보관법' '대파 보관법' '버터 보관법'들을 한참 검색했다.
결국 버터는 저렇게 냉동으로, 양파는 하나하나 랩으로 싸서 비닐팩에 보장.
시어머님이 알려주신 실리콘 얼음기에 다진 마늘을 넣어둔 건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다.
3월의 약속
예전에 비하면 약속을 현저히 줄이고 있다. 엄마아빠가 아시면 정말 섭섭해하실 정도로.
꼭 잡아야 하는 일정들과 봐야할 사람들만 약속을 잡았으니 나름 여유있어 보이지만 희한하게 일정이 있으면 있는대로, 집에 있으면 있는대로 참 바쁘다.
난 늘 지금 현재보다 더 바빠질 것에 두렵고 불안하다.
일상에 적응 중.
나도 3월이 되어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고 남편도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으니 지난달은 둘다 새 일을 시작한 달인 셈이다. 그리고 연수원 생활은 생각보다 더 많이, 자주 모였고 굉장히 공동체 생활을 강조했기 때문에 평일은 거의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미안한 말이지만 평일 저녁을 집에서 차려 먹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나는 찌개나 국을 뚝딱 끓일 실력이 안되니)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나는 혼자 저녁을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예전같으면 '그럼 나도 밖에서' 생각하며 없던 약속도 잡아서 먹고 왔겠지만 사실 저녁만 먹고 헤어지기가 어디 쉽나. 저녁을 먹으면 술을 한잔 하든, 차를 한잔 하든 해야하니 그러긴 또 귀찮고 해서 집에 바로 오게 되었다.
대부분 혼자 먹는 저녁은 볶음 라면과 떡볶이가 주 메뉴였다. 어떤 날은 연속으로 3일을 볶음라면을 해먹었고, 남은 불고기로 떡볶이를 해먹거나 사와서 먹거나 먹고 들어오거나. 한동안 고정이던 몸무게는 결국 1.5kg가 더 찌고 말았다.
출퇴근길은 90% 지하철에 서 있어야 한다. 아침에는 졸려서 힘들고, 특히 가만히 서 있다가 내릴 때는 다리가 저리고 휘청거릴 정도로 몸이 힘들다. 엊그제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당연히 그날도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을 타면서 문득 '아 일하고 퇴근하는 길도 이렇게 서서 가야 하다니'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까지 했다. 예전에 7시 넘어 퇴근할때도, 지금 5시에 퇴근하다가 이제는 4시에 퇴근하게 되었는데도 늘 서서 가니. 이건 어떻게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건가. 다들 야근하고 산다는데 이럴 땐 야근은 누가 하는 건가 생각이 든다.
엄마가 뭔지.
결혼 준비 기간 내내 엄마의 가장 큰 고민과 걱정은 '이바지 음식'이었다. 주문하자니 비싸기도 하고, 양은 너무 많을 것 같고, 비싼 거에 비해 실속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내가 도울테니 직접 하시는 게 가격이나 여러 면에서 낫지 않겠냐고 부추겼는데 나중엔 그렇게 말했던 게 죄송할 정도로 엄마의 부담이 참 크셨던 것 같다. 일주일 전부터는 자다 깨면 전 종류를 검색해보고, 이바지 떡 종류 검색해보고. 일주일 동안 핸드폰을 놓지 않으셨을 정도. 엄마의 이바지 음식은 보기도 그렇지만 맛도 너무너무 훌륭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노력과 정성과 고생이 다 보여서 시댁에 가서 뚜껑을 여는 순간 괜히 눈물이 찔끔 할뻔 했다.
어느 주말엔 갖다 놓을 게 있어서 잠깐 들른 거였는데 곧 나간다 하니, 점심 약속이냐, 그건 아니다 했더니 얼른 밥 먹고 가라며 5분만에 소고기를 구워주시고 김치찌개를 데워주셨다. 캬~ 김치찌개는 이맛인데.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결혼하니 좋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사람들은 보통 뭐라고 대답하지. 좋은 건 뭐고 안 좋은 건 뭐지. 그냥 보통은 재미로 "생각보다 힘드네요" 하고 넘기긴 한다.
집에 있으면 참 바쁘다. 퇴근 후 바로 집에 가면 여유롭게 저녁을 보낼 것 같지만 빨래는 늘 있고, 해놓으면 개놓을 것도 많고, 와이셔츠를 맡기건 다리건 해야하고, 쇼파에 누운듯 앉아 TV를 보는 일이 거의 드물 정도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그동안 엄마가 묵묵히 해오셨던 일들이었구나 느끼게 되었으니, 나도 결혼하고야 철이 들었나보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둘이 배탈 설사로 골골 대고 있을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는 아프면 방에 들어가 누워만 있으면 엄마가 다 알아서 죽도 해주시고 약도 챙겨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챙겨먹어야 하고 아프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고, 나 뿐 아니라 남편의 보호자로서 그의 건강도 챙겨야 하는구나. (물론 남편도 나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겠지) 이제 내가 몸 편한 시간들은 다 끝났구나, 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높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은 결혼 1달. 무엇보다 결혼하고 아쉬운 건 엄마의 음식을 자주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만 엄마의 음식이 그리운 게 아니었다. 특별한 요리나 별미가 아니라, 엄마가 반찬이 없다며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우렁 넣고 끓이시는 된장찌개가 제일 먹고 싶다.
3월 말이 되어서야 둘만의 시간을 좀 갖게 되었다. 물론 얼굴을 못 볼 정도로 바쁘게 산 건 아니지만 늘 분주했고 여유롭지가 못했다. 3월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그가 맛있다고 한 곳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고, 파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고, 지난주 일요일엔 도서관에 가서 각자 책을 보았다. 난 이런 시간이 참 좋다. 각자 쓸모있는 일을 하면서도, 함께 있는.
엊그제는 오바해서 정말 1년에 특별한 날만 갈만한 일식집에서 회를 먹었다. 여행을 가려다 안 갔으니 그 돈으로 먹자는 생각을 애써 해보았지만 좀 오바긴 했다. 다음에는 내가 몹시 아프거나 힘들 때, 혹은 가족 행사가 있을때만 오자고 다짐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비싸고 맛 없으면 화 나지만 비싸고 맛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위안하면서.
올해도 남편은 바쁜 와중에도, 피곤에 절어서 집에 오면서도 화이트데이를 잊지 않았다. 편의점에 파는 거여도 생각해서 사오는 성의가 참 좋다.
세상에, 드디어, 결국,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뉴스를 보면서도 얼떨떨.
사실 대통령 퇴진 구호는 오래 전부터 들었던 구호였는데 외치면서도 늘 생각했다. 이게 가능한 구호인가, 그냥 선동적인 구호인가. 그러면서도 퇴진시킬 만하니 그런 의미다라며 스스로 생각했었다.
정말 국민들의 힘으로 잘못하고 있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수 있구나, 조기 대선을 만들 수 있구나 생각에 벅찬 마음도 들고, 통쾌하기도 하고, 괜시리 씁쓸하기도 하고, 대통령이라도 죄를 졌으면 감옥에 간다는 상식이 작동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 오래된 일들 같은데 불과 몇년 안된, 다 박근혜 임기에 있었던 일들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그 다음은 우병우인가 생각하다가 아니다, 이 와중에 맘 놓고 있을 MB가 생각나 또 화가 나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 훈훈하고 가슴 뜨거웠던 겨울. 이젠 정말 봄을 맞이할 준비를.